독자 여러분께 보내는 슈도힐링의 편지 - 스물네 번째

표지

표지 이미지 저작권은 슈도힐링 작가 님에게 있습니다.


  모처럼 남자들끼리 모였다. 규영이 빠진 게 아쉽긴 했지만, 그래도 남자 셋이 어딘가. 지후, 수호, 진원은 각자의 파트너를 '깊이' 잠재우고 자정도 훨씬 넘은 새벽에 술상을 차렸다.

  "형 오시니까 좋네요. 반갑다, 되게."

  "그러게 말이야. 여기 좀 심심했지. 민지후 없어서."

  "심심하긴. 하진이 데리고 좋은데 잘 다니더구만."

  "우리가? 그랬어?"

  "그랬지. 고맙다. 내일 고기 먹자. 내가 살게."

  "아, 형. 제주도 오셨으면 드시고만 가시는 겁니다. 일주일 치 장 봐 놨고요, 맛있는 집들 예약도 몇 군데 해놨어요. 연초에 서울 가시는 거 예정 대로죠?"

  "응. 하진이 남은 연차 이번 주에 다 쓰게 한 거라. 쭉 쉬고 1일에 올라갈까 해. 그러라고 해줘서 그것도 고맙고. 난 분명히 호텔 잡겠다고 했다- 그러니까 눌러 앉은 거로 말고 초대받은 걸로 해주라."

  "아유, 형! 다음엔 한 달 살기 오세요. 얼마든지 모실게요."

  "진원이네도 심심한데 잘 된 거지- 제주도도 타지 아니야. 일 때문에 바쁜 거랑 상관없이 심심해. 나도 밖으로 길게 다녀보면 그렇더라고."

  "맞아요, 형. 진짜."

  "그나저나 나 애들한테 비밀 지키느라 힘들었다. 주연이 좀 집요한데가 있거든. 못 믿겠지만 진짜야."

  "왜 못 믿어? 주연이 그럴 거 같잖아."

  "아, 그래? 나만 몰랐어? 정작 나만?"

  "지랄. 아무튼 신세 졌다. 아직 한참 더 져야 하니까 보답은 나중에 할게. 나한테 와- 나한테. 나도 대접 좀 해보자."

  이렇게 마음 편히 앉아 소주잔을 기울인 지도 꼭 반년. 허리를 세워 앉아있던 지후가 막 비운 잔을 내려두고 벽에 등을 기댔다.

  "후우... 좋다아아아-"

  "공부는. 할만해?"

  "응, 그럼. 할만해야지. 그래야지. 정신없이 지내."

  "근데 형. 하진이가 안 물었어요? 연말 내내 여기 와 있으라고 하셨을 때요. 아직 모르죠? 형 언제 가시는 지도."

  "응. 하진이 낯가리느라 나 언제 가는지 아직 묻지도 않았어. 이 정도면 안 궁금한 거 아니냐고."

  "이건 뭔 소리야- 낯을 왜 가려?"

  "가리더라고, 하진이가. 그러더라. 연말은 뭐, 처음부터 '네-' 했겠냐. 세계 최고로 혼자 잘 있을 수 있다는 둥, 이참에 나랑 매일 오래오래 영통하고 싶다는 둥 며칠 버티길래 야단쳤지."

  "어유- 세계 최고 씩이나야?"

  셋이 술잔을 마주쳤다.
  지후는 이번에도 원샷. '크으-' 소리가 절로 나왔다.

  이렇게 거나하게 올라오는 취기에 기분 좋게 웃어본 기억, 나른하게 늘어지는 몸으로 뒹굴던 기억이 아득했다. 웃을지 말지를 고민해야 할 만큼 실없는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한 기억은 까마득했고.

  지후는, 지후도, 만만치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.

  "우리 하진이는 잘 살았어?"

  그러자고 약속하지 않았지만, 아무도 하지 않고 있던 이야기였다. 지후가 없는 동안 하진이 어땠는지, 하진이 없는 곳에서의 지후는 괜찮았는지.
  이건 역시 지후만 꺼낼 수 있는 이야기였다.

  기껏 질문을 던져놓고 아무도 쳐다보지 못한 건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를 몰라서였고, 누가 답해줄 수 있을지를 몰라서였고, 물어도 될지를 몰라서였다.

  주인이 타인에게 묻는 서브의 안부.
  그래도 묻고 싶었다.
  그간 하진은 지후에게 단 하루도 빠짐없이 좋은 하루였다고 전해왔기 때문에.

  "잘 살았어."

  "그래?"

  더는 따라붙지 않는 말.
  지후가 끄덕이며 술을 한잔 다시 들이켰다. 안주도 없이.
  진원이 지후의 빈 술잔을 채웠다.

  그러곤 아무도 말이 없는 동안, 지후는 아마 진원의 대답을 기다렸을 것이다. 수호는 진원에 비하면 하진으로부터 훨씬 먼발치에 있었다. 짬이 나면 주연과 어디로든 데리고 다녀준 건 수호가 맞았지만, 하진이 진짜 일상을 그나마 좀 공유한 건 예나였을 테니까.

  그걸 알면서도 진원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.

  다른 때 같았으면 당장 예나와 둘이 목젖이 다 보이게 웃는 사진을 열어 보이며 얘기해 줬을 것이다. 서하진은 여전히 이렇게 즐겁게, 씩씩하게, 서하진답게 잘 지내고 있다고.

  하지만 진원은 쉽사리 말하지 못했다. 오랜만에 보는 주인 낯을 가린다는 하진의 마음이 어떤 건지 감히 헤아릴 수가 없어서.
  짐작도 할 수 없으면서, 하진이 잘 지냈노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.
  대신 그저 지후가 비우는 잔을 연거푸 채워 놓을 뿐이었다.

  "넌 왜 대답 안 해줘. 하진이 편이야?"

  멋쩍게 웃는 진원의 술잔에 지후가 잔을 마주쳤다.

  "이상하게 하루 잘 보냈냐는 말이 어렵더라고. 어려워지더라고."

  지후가 처음으로 꺼낸 말. 비로소 듣게 되는 그곳에서의 지후 이야기였다.

  "왜 어려워, 그게?"

  "왜냐. 음..."

  "..."

  "아니면 또 어쩔 건가, 싶어서."

  "맞는 말이네."

  "그리고 내가..."

  "니가 힘들지, 인마. 그래- 니가 힘들어. 하진이는 그래도 살던 대로 사는 거라고. 물론 하진이도 힘들겠지. 그래. 힘들어! 그래도 너만 하겠냐?"

  "왜 이래. 내 편이야?"

  "아니, 하진이 편이야. 다시 생각할게."

  셋은 끌끌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.


  원래의 분량을 반 정도 잘라서 러프하게만 손 본 글로 올립니다.
  이렇게라도 잠깐 전해드리고 싶어서요.

  수호가 틀어막고, 다시 또 틀어막은 지후 이야기, 사실은 제가 막아 둔 겁니다. 큼큼...
  저 숨차서...
  일단 살고 보자. 
  ㅇㅋㅇㅋ.

  인사와 그 밖의 소식은 다음 주에 와서 더 전하겠습니다.

  이러나저러나 봄입니다.
  그래서 또 행복해 보자고요. ♡

6 댓글

  1. ㅠㅠ 지후다
    작가님 저 이따가 다시 올게요!!
    고생하셨겠다 우리 작가님💕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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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1. 지후 마음 아프지 않을 만큼만,
      하진이 마음 편할 만큼만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겠죠? ㅠㅠ
      딱 그 만큼 낯가리나봐요 하진이가.
      틀어막은 지후 이야기 넘나 궁금해요!!
      이번 토막글에도 역시나 작가님만의 글 스타일이 잔뜩 보여서 좋았어요. 굿밤!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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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2. 문득 든 생각인데요. 출판에 대해 암 껏도 모르는 1인입니다.
    때주 단행본 작업 메이크업인가 했는데 혹시 성형인가요?
    '뭘 해도 맘에 들겠지만'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나 해서요.
    낯가릴까 봐 ㅋㅋㅋㅋ 😆😆😆😆😆
    풍성해지는 때주 환영이요 🤗🤗🤗🤗🤗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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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1.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 책갈피 해놓고 다시 읽곤 하는데, 저 글도 여러 번 읽고 또 읽겠다.
      지후 시점으로, 하진 시점으로 그리고 나라면... 그러다 작가님은 왜? 까지도 ㅋㅋ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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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2. 음. 시술 정도로 할까요...? (어려운 질문 금지... 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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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3. 슈사로사24/3/26 08:49

    아휴 작가님 토막글이 이렇게 멋지다니 ㅜㅠ 지후진짜 멋짐~~♡♡♡♡♡작가님 뜻대로 진짜 단행본 너무 기대됩니다♡♡ 따뜻한 봄날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기른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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