독자 여러분께 보내는 슈도힐링의 편지 - 여덟 번째

표지

표지 이미지 저작권은 슈도힐링 작가 님에게 있습니다.


  오랜만이었다. 
  마음먹을 것까지도 없는 이 별것 아닌 것에, 하진과 지후 누구 하나 쉽사리 마음먹지 못했다.
  시간이 갈수록 그랬고, 각자의 삶이 각각의 삶이 되어갈수록 더 그랬다.
  그리움이 깊어지면 반가움도 따라 깊어질 줄 알았건만, 겪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.

  - 이게 얼마 만이야.

  “영통이요? 그렇죠! 영통은 그렇죠.”

  - 뭐는 안 그런데.

  “... 캠이 있으니까. 우리 매일 보긴 보니까요. 주인님 얼굴이 오랜만은 아니고-” 

  지후가 다른 말 없이 끄덕였다. 동시에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를 하진은 놓치지 않았다. 
  매일, 하루에도 몇 번씩 보던 지후의 웃는 낯.
  반가움에 배시시. 하진도 똑같이 입 끝을 올렸지만, 웃음이 채 다 멎기 전에, 하진은 지후의 눈동자 한가운데에 두었던 시선을 비꼈다. 

  마주 보는 것이 익숙하던 때가 까마득했다.
  잠깐씩 잡히는 주름마저 놓치고 싶지 않아 지후 얼굴 구석구석을 바삐 훑던 하진의 애달은 눈길이 둘 모두에게 당연하던 때가 역시 그랬다. 

  지후는 좀처럼 똑바로 눈을 맞추지 못하는 하진을 확인하고는 얼굴 가까이 들고 있던 폰을 세워두고 의자에 끝까지 기대앉았다.
  15도쯤 넘어간 등받이에 체중을 다 싣고 머리 뒤로 손깍지를 끼는 것으로, 그렇게 하진에게서 몇 걸음 물러나 주었다. 

  그제야 하진의 시선이 다시 지후 눈에 맺혔다.
  지후에게도, 하진이 맺혔다. 

  - 이만큼쯤 되나? 

  "..." 

  - 지금 우리 이만큼쯤 떨어져 있어? 

  "..." 

  - 떨어진 거야, 멀어진 거야. 

  무릎을 세워 침대 위에 앉았던 하진이 대답을 피하며 슬며시 벽에 등을 기대고 화면을 멀리하려 할 때쯤, 

  - 그대로 들어. 

  "네. 네, 주인님." 

  하진이 얼른 등을 떼고, 세운 무릎에 가슴을 붙였다.
  몸을 조금 웅크린 하진의 귓가에 지후가 방에 틀어 둔 노래가 아주 멀리, 작게 들렸다. 

  - 난 너 볼 수 있는데. 

  "..." 

  - 더 가까이 들이밀어도 눈 맞출 수 있다고. 

  "..." 

  - 그러니까 얼굴 떼지 마라. 

  "네." 

  하진의 얼굴이 붉어졌다. 지후는 다시 싱긋 웃었고. 

  둘은 그렇게 한참을 보았다.
  아무 말도 하지 않고, 아무것도 하지 않고. 

  이 아까운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며 부산을 떨던 시절은 진작 지나 보냈다. 뭐라도 하는 시간과 이렇게 그냥 보내는 시간이 모두 '여전히 떨어져 있는 시간'임을 깨닫게 된 후로는 하진이 아무것도 보채지 않았기 때문에. 

  그 잠깐 같은 한참 사이, 지후는 커피를 내려 와 다시 앉았고 하진은 빨아둔 수면양말을 꺼내 신었다. 

  - 오늘은... 바쁘겠다. 

  "오늘도." 

  - 그래. 오늘도. 

  "푹 주무신 거죠?" 

  - 응. 

  지후가 끄덕이며 해준 대답에 하진도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. 

  "따뜻하게 입으셔야 해요. 춥게 다니시면 안 된다고요." 

  - 알았고, 잠옷 단추 다 채워. 목 끝까지 다. 

  "네, 주인님." 

  - 지금. 폰 내려두고. 

  고개를 숙여 한 손으로 단춧구멍을 비집던 하진이 그러겠다며 핸드폰을 침대에 내려두자마자, 둘이 나란히 누워 보던 성수동 방 천장이 지후 화면을 가득 메웠다. 

  이번엔 지후 시선이 화면을 비꼈다. 그 짧은 순간, 아침 찬 공기가 가슴을 저 아래로 내리눌렀다. 

  꼼지락꼼지락, 바스락바스락.
  이어 잠시 어지럽게 흔들리던 화면 가득, 방긋 웃는 하진의 얼굴이 담겼다. 

  "채웠어요, 주인님." 

  - 잘했어. 밤새 이불 좀 차 내지 말고. 

  "네, 주인님." 

  - 응. 

  "주인님, 그..." 

  - 그 뭐. 

  "조금 가까이 보고 싶어요, 주인님..." 

  지후가 몸을 숙여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폰을 손에 들었다. 

  - 이제 다시 좀 친해진 건가, 우리? 

  "..." 

  - 처음 만났을 때도 가리지 않던 낯을. 응? 서하진. 

  하진이 웃었다.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는. 

  - 괜찮아, 이런 건. 얼마든지. 

  "..." 

  - 외롭지만 마. 

  "그럼요- 외롭긴 누가요. 그렇진 않아요. 그냥..." 

  - 응. 그냥. 

  "..." 

  하진의 눈동자가 지후의 얼굴을 찬찬히 훑고 지나갔다. 까마득하게 멀어진 듯한 그 어떤 날처럼. 

  "만지고 싶어... 주인님 얼굴. 다요. 다..." 

  - 와. 그만 애 먹이고. 

  "..." 

  - 만지러 오라고- 빨면 더 좋고. 사리 나오겠다. 

  하진이 크헥 하며 기침하듯 웃음을 터뜨렸다. 

  "얼굴을요? 빨아요?" 

  - 아, 어디든. 뭐, 중요해? 

  지후가 폰을 처음과 똑같이, 딱 그만큼 더 얼굴 가까이 들었다. 

  - 이거 더 자주 할게. 더 자주 하자. 

  "그래 주실 거예요?" 

  - 응. 그러자. 

  "감사합니다, 주인님." 

  - 누가 보면 대단히 고분고분한 서브인 줄 알지. 억울하다. 

  "진짜 나만 한 서브 없다. 정말로." 

  지후 웃음소리가 작게라도 내내 들리던 노랫소리를 가렸다. 

  - 이번 달 말까지. 일정 잡아서 알려. 티켓팅은 하지 말고. 

  "..." 

  - 월말이면 아직 한참 남았어. 고민할 시간 충분해. 언제로 잡든 그건 상관없으니까 그때까지 정해. 말 들어. 

   "네, 주인님." 

  - 응. 그럼 오늘은 이 정도로 할까? 

  "네. 주인님, 오늘도 조심 또 조심하시고요. 식사 꼭 챙기시고요. 네?" 

  - 응. 

  하진이 ‘좋은 하루-’라며 손을 흔들었다. 

  - 그래. 잘 자라. 

  “어! 주인님도 해주셔야죠오- 손 흔들어주셔야죠- 빨리요.” 

  - 왜 아닌가 했다. 바로 자. 딴생각하지 말고. 

  “손은요, 손은요!” 

  - 이따 보자. 

  지후가 흔들어주는 손에 하진이 한번 더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.  

  곧, 언제 멈추어야 덜 어색할지 모를 웃음을 거두느라 앙다문 입이 까만 창에 어렸다.


11 댓글

  1. 우리 하진이 가면
    돌아오기 싫고 그럴까 더 망설이나 봐요🥹
    영통도 보고 싶고, 만지고 싶고 그러니 영통도 자주 안 하려고 하고요😭

    또 아무것도 보채지 않는 하진이 호주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저랬겠지요😢
    의젓하고 대견한데 짠하고 그러네요ㅠㅠ

    그래도 씩씩하게 지내고 있나봐요ㅎㅎ
    여전히 이불 차며 자고요 ᄏᄏᄏᄏᄏ🤭

    하진이가 가는 거 망설이고 너무 보고 싶어서 더 가기 힘들어하니 숙제로 언제 올 건지 정하라고 시키는 지후의 명령!!! 저런 명령 너무 좋아요~~

    또 오늘 올려주신 토막글은 지후 미국으로 가고 얼마 안 지난 7월에서 8월 정도가 아닐까 짐작해 봅니다ㅎㅎ🤔
    그리고 저 때도 지후가 써준 편지는 여전히 못/안 읽었으려나요??
    문득 궁금해졌어요

    그리고 영통 끊기 전에 엉뚱하고 귀여운 건 여전하네요🥰
    둘 다 건강히 지내길~

    그리고 작가님은 이번 주에 아 찐 북스와 미팅 있으시죠??
    현업과 단행본 작업 둘 다 모두 파이팅입니다!!

    이번 주 한국은 영하권 추위가 찾아온다던데
    감기 걸리지 않게 건강히 따습게 입고 다니시길 바라요😊🌞
    돌아오는 한주도 파이팅입니다!!

    사랑합니다❤❤️‍🔥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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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1. 아 문득 든 생각인데

      우리 하진이 지후랑 떨어져 있는 동안은 벌매도 안맞기로 해서 몸에 멍 없으니까

      운동 좀 하면 어떨까요!!

      멍 있음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기 힘드니까 필라테스나 헬스 또는 발레, 수영 같은 운동들은 하기 좀 힘든데

      지금 요 타이밍에 꾸준히 하면 건강해지고 체력도 더 좋아지니까 작가님 좀 시켜보는 거 어떨까요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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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2. '작가님은 왜 유학직전에 둘을 만나게 했을까' 생각해본적이 있어요.
    만나고 깊어지고 떨어지고..게다가 약간은 멀어지고..ㅠ
    하지만 그래서 보이는것들이 있어요.
    사람 민지후, 사람 서하진. 돔이고 서브고 이런거 말구요.
    저 갑자기 일기글 제목이 떠오름.
    어떤 선택들로 채우든, 훗날 되돌아보면 어느새 당연한 인연♡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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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1. 작가님은 디테일이 분자 수준..ㅋ
      읽다가 너무 자세해서 겨울에 가을탈뻔 했잖아요. 너무 쓸쓸해 ㅠ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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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3. 낯가림ㅎㅎ ^^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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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4. 슈사로사♡18/11/25 13:31

    하진아 그냥 날아가서 같이 있으면 안될까 ㅜㅠㅜㅡ흑흑흑 그냥 둘이 같이 있게 해주세요ㅜㅜㅜㅜㅜ 둘다 너무 ㅜㅜㅜ힘들다요ㅜㅠ
    근데 영통도 설레는지 ㅜㅜㅜ 진짜 작가님 최고예요♡♡♡ 작가님 추운날씨 건강조심하세요♡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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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5. 춥게 다니시면 안 된다면서 전기장판은 언제 가져다주려고?
    아직 '출국'이라 적어놓은 날이 안된 건가?
    주인님 억울할만하네 ㅋㅋㅋㅋㅋㅋㅋ ^^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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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6. 작가님 단행본은 언제쯤 나오나요…? ㅂㅍ에서 290화까지 소장했는데 나머지를 소장하지 못해서요 ㅠㅠ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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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1. Jinny님 ㅂㅍ 은 어느 사이트일까요?^^;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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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2. 북팔이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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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7. 하진이가 가서 보는것 좋지만 또 헤어짐을겪어야 할순간이 두려운가봐요 얼마나 보고싶고 만지고 싶겠어요 ㅎ 그런 하진이맘을 아는 지후 주인님은 역시 숙제로 ㅋㅋㅋ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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